사칙 양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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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설명2. 매체에서의 등장

1. 설명 [편집]

조선 문종후궁이자 경숙옹주의 생모.

문종에게는 8명의 후궁이 있었으며, 왕비와 후궁에게서 3남 5녀를 보았지만 많은 자녀가 요절하여 장성한 자녀는 현덕왕후 권씨 소생인 경혜공주단종, 그리고 사칙 양씨가 낳은 경숙옹주 세 명이었다.

사칙 양씨는 이후 딸 하나를 더 낳았으나 이 왕녀는 2세에 사망하였다.[1]

조선의 후궁 중 '사칙'이라는 칭호는 양씨가 유일하다.

왕의 후궁인데 세자궁의 내명부인 "사칙"으로 불리는 점, 문종실록에도 "궁인"으로 불리는 점으로 보아 양씨는 문종 즉위 전에 사망한것으로 보인다.[2]

2. 매체에서의 등장 [편집]

대체역사물 내가 바로 세종대왕의 아들이다에서는 고려 시절 정착한 위구르무슬림의 후손이라는 설정을 넣어서, 큰 가슴과 갈색머리에 평범한 조선 남자들보다 키가 큰 서구적 외모의 미인으로 등장한다.
[1] 왕녀가 졸(卒)하였다. 나이는 2세(1450년생)인데 궁인 양씨(宮人楊氏)의 소출이었다. -《문종실록 1년 8월 12일 정축 1번째 기사》[2] 1450년 1월~음력 2월 17일(문종 즉위날) 사이에 사망한 것 같은데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양씨의 둘째 딸이 1450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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